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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향기(2018-02-27 02:48:59, Hit : 135, Vote : 0
 이옥 (李鈺)

이옥 (李鈺)








1818년 어떤 젊은이가 어지럽게 쓴 원고 뭉치를 들고 한 노인을 찾았다. 자기 부친이 남긴 유고의 교열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노인에게는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젊은 시절, 틈틈이 지은 벗의 글이었다. 원고를 뒤적이다가 문득 그가 죽고 없음을 깨닫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하여 벗이 남긴 글을 정갈하게 옮겨 적은 뒤 이듬해 오월 단오 작은 문집으로 엮었다. 어지럽게 쓴 원고만 남긴 채 죽어간 벗은 “나는 요즘 세상의 사람이다. 내 스스로 나의 시, 나의 문장을 짓는데 선진양한(先秦兩漢)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위진삼당(魏晉三唐)에 무어 얽매일 필요가 있는가”라고 자부하던 이옥(李鈺)이란 인물이다. 그런 벗의 유고를 눈물로 갈무리한 인물은 김려(金鑢)이다.

정약용과 박지원 같은 최고의 지성들이 활동하던 정조 때, 그들은 또 다른 빛깔로 문단을 수놓은 문학적 동반자였다. 이옥과 김려는 살아서 절친한 글벗이었고 죽어서도 이토록 각별한 글벗으로 남았다. 그들은 ‘우정의 라이벌’이다.


새로운 글쓰기로 국가권력에 맞서다





이옥 (李鈺)


1760년(영조 37년)에 태어나 1816년(순조 17년)에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령대군 후손이나 고조부가 서자였고, 성균관 유생 시절엔 정조로부터 소설식 문체 때문에 배척을 받아 입신출세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문인으로 자처하며 평생을 지냈는데, 섬세한 묘사와 여성적 정감이 짙게 풍기는 소품(小品)에 특히 뛰어났다. 남긴 글 가운데 일부를 절친한 벗이던 김려가 거두어 '담정총서'에 실어 전한다. 최근 실시학사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을 모아 '역주 이옥 전집'을 냈다.







이옥은 참으로 문제적 인물이다. 자신은 지금 사람이니 선진양한이나 위진삼당의 글에 구애 받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직감할 수 있다. ‘문장은 반드시 선진양한을 본받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文必秦漢 詩必盛唐)’는 말은 당시 불변의 진리에 가까웠다.

그런 글쓰기야말로 진정한 문장, 곧 고문(古文)에 이르는 왕도라 여기던 때이다. 그런데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자신은 ‘과거/거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결별을 선언했으니 참으로 당차다. 그렇지만 그런 당찬 글쓰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성균관에 입학해 꿈을 키워가던 젊은 이옥은 정조의 명으로 글 한 편을 짓게 됐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정조가 보기에 이옥은 순정(純正)한 글쓰기가 아니라 경박한 소설식 문체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는 그런 문체를 쓰지 말도록 경고했지만 이옥은 고치지 않았다.

매일 10편씩 열흘 동안 시를 지어 바치라는 과제를 주기도 하고,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해 보기도 하고, 경상도 삼가현(三嘉縣ㆍ지금의 경남 합천 지역)에서 충군(充軍ㆍ범죄자에게 내리는 군역)하는 엄벌을 내리기도 했지만 이옥은 자신의 글쓰기를 고집했다.

사소한 문체에 끊임없이 시비를 건 정조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임금의 명령을 끝내 따르지 않은 이옥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조와 이옥의 이런 대립은 조선후기 문학사의 큰 사건인 문체반정(文體反正) 사례 가운데 하나다. 경박한 문체를 순정하게 바꾸려는 정조의 시도는 박지원, 남공철, 김조순 등 당대 일류급 문사들도 곤욕에 빠뜨렸다.

거기에는 노론과 남인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있지만 성리학적 질서와 사유 체계를 위협하는 뿌리를 제거하려던 노회한 정조의 고육지책이 담겨 있다. 양명학, 서학과 같은 이단 사상이라든가 고증학, 자연과학과 같은 학문 방법론이 위기의 주범이라고 본 정조는 그것이 명말청초에 풍미하던 소설식 문체에 실려 들어왔다고 판단했다.



미더운 동반자요 후원자인 김려

김려


1766년(영조 43년)에 태어나 1821년(순조 22년)에 역시 56세로 숨졌다. 노론이라는 가문적 배경과 탁월한 문학적 재능으로 당대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성균관 유생 시절 강이천(姜彛天)의 '비어옥사(蜚語獄事)'에 연루되어 10년에 걸친 유배생활을 했다. 만년에 연산현감, 함양군수를 지냈으나 크게 출세하지 못했다. '사유악부' '우해이어보'에서 유배지의 풍속과 세태를 실감나게 그렸다. '한고관외사' '광사' 등 방대한 분량의 야사집을 편찬했으나 대부분 유실됐다. 문집 '담정유고'가 전한다.







김려는 그런 이옥을 눈물로 추억하고 그가 추구한 글쓰기를 적극 옹호했다. 물론 김려 역시 16세에 ‘김려체’로 불리는 문체를 유행시켰던 탁월한 문인이었다. 서계(庶系)이자 세력을 잃은 소북(小北)에 속한 이옥과 교유하긴 했지만 그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당한 노론(老論)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옥이 문체 때문에 쫓겨나 지방을 전전하고 있을 즈음, 김려 역시 친하게 지내던 글벗과 나눈 비어사건(飛語事件)에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게 된다. 복잡한 사건이라 몇 마디로 간략하게 정리하기 힘들지만, 어떤 섬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퍼뜨렸다는 죄목이었다. 10년의 유배생활은 혹독했다.

하지만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자신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젊은 시절과 벗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벗들의 문학적 실천을 열렬하게 변호했고 자신과 문학적으로 교류한 이옥, 김조순, 이노원, 이안중 등 10여 명의 글을 ‘담정총서(潭庭叢書)’로 엮어내기도 했다. 김려는 이옥의 미더운 동반자이자 변함없는 후원자였다.

거대담론 뒤집은 탈중심적인 글쓰기

이옥과 김려는 한평생 고집한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던 것일까? 많은 작품이 유실됐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글쓰기 방향과 진정성을 읽어내기는 남아 있는 작품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당시 사대부가 문장을 통해 구축해 놓은 세계상을 전복하고자 했다.

전통의 사대부가 다루는 문제란 국가와 정치, 우주와 성명(性命) 같은 거대담론이 대부분이다. 문장이란 도(道)를 전하는 도구라는 재도론(載道論)은 이런 문학관을 대변한다. 하지만 이옥과 김려는 그런 불변의, 또는 규범적인 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천지만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니 진실로 하나로 합할 수 없거니와, 하나의 하늘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한 곳도 서로 같은 땅이 없다”는 이옥의 말은 그런 세계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천지만물을 자신의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문학적 사명으로 삼았다. 인간을 다루더라도 남들이 돌보지 않는 소외된 인간에 주목하고, 세계를 다루더라도 관념이 된 자연이 아니라 구체적 사물에 주목했다. 인정물태(人情物態)에 대한 곡진한 묘사는 그들이 추구한 글쓰기의 요체였다.

그들이 다룬 인물이 대부분 포수, 의원, 거지, 도둑, 장사꾼, 병졸, 기생과 같은 미천한 부류라든가 그들이 포착한 사물이 개구리, 벌레, 물고기, 봉선화, 거미, 벼룩, 나비, 나귀와 같은 미물인 데서 그 점이 잘 드러난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소재 면에서 이미 탈중심적인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었다. 무엇을 소재로 선택하는가에 따라 글의 주제, 격식, 문체, 어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관건은 자신이 선택한 그런 소재를 얼마나 핍진하고 진실되게 그려낼 수 있는가에 있었던 것이다.

여성 다룬 시편들 걸작 중의 걸작

그런 점에서 그들이 여성을 즐겨 다루었고 거기에 담긴 인간 이해가 새롭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조선 후기 문인 가운데 그들보다 여성의 정감을 빈번하고 곡진하게 그려낸 경우를 찾기 어렵다. 18세기 말 도시 여성의 다채로운 삶을 66편의 절구시(絶句詩)로 담아내고 있는 이옥의 ‘이언(俚言)’과 천한 백정 딸의 인생역정을 장편 서사시로 엮어내고 있는 김려의 ‘장원경 처 심씨를 위해 지은 시(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최고의 걸작이다.

어떤 사람이 이옥에게 왜 여성에 그토록 집착하느냐고 비난한 적이 있다. 그때 이옥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情)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고 답했다.

천지만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데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요긴한 게 愎鳴?했으니, 천지만물의 근원을 태극(太極)이라든가 음양(陰陽) 같은 추상에서 구하려던 중세적 사유로부터 그들은 멀리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옥과 김려가 남긴 작품을 보면 미천한 인간이라든가 미물, 나아가 고통받는 여성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고 따뜻했는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지만물 가운데 인간만의 독점적인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떵떵거리는 남성만의 독점적 지위는 더더욱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과 사물, 귀한 것과 천한 것, 남성과 여성을 모두 동등한 개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평등안(平等眼)은 그들을 이런 진보적인 세계 이해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때 그들의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에게도 화두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들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업신여기며,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불평등이 여전히 존속되는 한에서는.










글=정출헌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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