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orea-taiji.com ☜ 홈

0
19  1 1

  View Articles
Name  
   운영자 
Homepage  
   http://korea-taiji.com
Subject  
   <일간스포츠> 들어는 봤나? 음양팔괘문??

'음양팔괘문'이 뭐냐.

지난 20일 네오파이트대회 미들급에서 우승한 홍주표(35)가 "결정적인 위기에서 빠져 나오고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데미지를 입힌 데는 음양팔괘문의 힘이 컸다"는 소감을 밝히면서 음양팔괘문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택견(4단) 검도(4단) 유도 복싱 등을 섭렵한 종합무술인 홍주표는 본격 이종격투기 대회 참가를 앞두고 6개월 전부터 브라질유술과 음양팔괘장을 집중연마해 왔다. 지난 8월 예선 때부터 세차례 끝내기 기술로 암바(팔꺾기)를 사용하면서 브라질유술 실력은 충분히 보여준 반면 음양팔괘장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 중국 무술 태극권의 일종으로 공수 양면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결승전 상대 오쿠다의 결정적인 암바 공격에서 두 차례나 빠져나온 것이 좋은 예다. 암바는 대개 몇초를 못버티고 탭(항복선언)을 할 수밖에 없는 필살기. 하지만 끝내 탭을 안 하고 버티면서 빠져나왔다. "응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는 소감대로 표면요인은 강한 정신력. 하지만 정신력의 바탕엔 음양팔괘문의 심법(心法)이 작용했다. 관절기 공격을 당할 때의 심법은 내공을 이용해 자기 몸이 없다는 느낌으로 자기몸을 '지우는' 것. 신경 반응을 줄이고 통증을 완화시킨다. 몸을 비틀어 빠져 나온 데는 신법(身法)이 스며 있다. 허리와 무릎, 팔꿈치 등을 걸레 짜듯이 짜는 것으로 방어는 물론 타격을 가할 때도 유용하다.

그 밖에 구사한 기술은 '암퇴'와 '심의육합권'. 발뒤꿈치 차기와 로킥은 암퇴의 일종이다. 홍주표의 로우킥은 오른발이 앞에 나온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바깥쪽으로 휘돌려 차는 것. 뒤쪽에서 발이 나와 차는 킥복싱의 로킥과는 다르다. '심의육합권'은 중국 회족의 무술로 접근전 무릎차기 등이 있다. 킥복싱을 배우지 않은 홍주표가 로킥, 무릎차기 등 킥복싱과 유사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던 연유다.

음양팔괘문 스승 정민영 씨(48)는 "홍주표는 각종 무술을 섭렵한 타고난 무골로 현재 브라질유술, 음양팔괘장,태극권 등 새 무술을 접목 중"이라며 "수련이 쌓이면서 더욱 위력적인 격투기 강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후영 기자 <hykim@dailysports.co.kr>  


    -----------------        ---------------------          ----------------------

<무림고수를 찾아서> 홍주표

‘4각의 정글’ 피의 본능으로 공포와 싸운다  
  

4각의 링에서 벌어지는 피가 튀고 뼈가 꺾이는 혈전. 그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싸움에 관중들은 환호한다. 이종격투기. 둘중 하나가 전의를 상실한 채 링위에 나동그라져야만 대개 싸움이 끝이 난다. 단련된 파이터들 조차 링에 오르기전 ‘무한 공포’를 토로하곤 한다. 무얼 얻기 위한 싸움일까. 단지,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고 했던가. 강해지고 싶은 것, 그 뿐이다.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전사들은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룰로 작용하는 사각의 링에 몸뚱이를 내던지고, 관중들은 그 대리 만족을 느낀다. 국내 이종격투기를 대표하는 격투사들의 무술, 그리고 혈투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홍주표(34). 지난 2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이종격투기 대회 ‘네오파이트 Into the Fire’ 미들급 초대 챔피언. 미국과 일본의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을 4강, 결승에서 물리친 전사다. 링네임은 ‘태껸 최고수’. 태껸 명인전과 최고수전에서 4관왕에 올랐다. 그의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다는 평가다. 대회 뒤 며칠이 지나 홍주표를 서울 홍은동 한 태극권 도장에서 만났다. 음양팔괘문 정민영 관장(문화일보 6월14일자 무림고수를 찾아서)과 브라질 유술 홍영규 관장(6월 21일자〃)이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정·홍 두 관장의 제자인 홍주표는 혈투를 치르고도 말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억 나시죠? 지난 번 취재 때 봤었잖아요….” 정 관장의 얘기를 듣자니, 기억이 새롭다. 당시 정 관장이 홍주표를 이종격투기에 나갈 선수로 소개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그때 트레이드마크인 파마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맨발로 태극권을 수련중이었다. ‘이종격투기 선수가 태극권을?’하고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났다. 20여년 가까이 민속씨름과 태껸, 유도, 검도를 배워 한국과 일본 무술에 심취했던 홍주표는 중국무술 태극권을 배우기 위해 6개월전 정 관장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이종격투기 대회에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의외였다. 지난 4월 국내 최초의 이종격투기 대회가 열렸다. 당시 4명의 파이터가 와일드카드로 본선 진출의 기회를 잡았는데, 태껸 최고수였던 그도 그중 하나였단다. 그러나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태껸 최고수라지만 ‘스트리트 파이팅’을 연상시키는 싸움에 나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주 링에서 엄청난 투혼을 보여준 그도 ‘싸움 공포’에 떠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한편으론 민족무예 태껸의 최고수로서 설혹 당할지도 모를 패배의 수모도 염두에 둬야 했단다.

그런 홍주표가 정 관장의 도장을 찾은 한달만에 두려움을 극복했다. 마음을 잡은 것이다. 심법(心法)이라고 했다. 공포는 내 안에서 시작된다. 무협지에나 나올 얘기로 간주했던 ‘내공’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 된 때였다. 마음이 이르는 곳에 육체적인 힘이 따른다. 주먹과 발차기는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터져야 한다. 이종격투기 출전을 결정하고 나서는 정 관장으로부터 심의육합권, 음양팔괘장의 실전기(實戰技)라는 낱기술들을 익혔다. 홍영규 관장을 찾아서는 유술기술을 보강했다. 또 복싱을 배웠고, 스파링도 했다. 자신감이 붙어나갔다. 6개월이란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수십년간 무술에 빠져 살아온 그가 자신의 무예를 총정리할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자니, 홍주표는 진정한 무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시무시한 파이터라기보다는….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무술을 제대로 수련하는 법을 깨쳤단다. 역시 실전을 경험해야 진정한 무술을 익힐 수 있다. 이런 것이다. 그는 10여년간 검도를 익혔으되, 제대로 된 검(劍)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가 수련한 검도는 그저 ‘막대기 싸움’에 불과했다. ‘죽도(竹刀)’도 분명 검이다. 생사를 가름하는 검을 그렇게 쉽게 쳐내서는 안된다. “링 위에서 상대의 주먹이 날아오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느꼈죠. 무서웠던 겁니다. 내가 진정 제대로 무술수련을 했더라면 고작 주먹질 따위에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홍주표가 치른 4강, 결승전을 복기해보자. 가슴 떨리는 대결이었다. 국내 이종격투기 대회는 생긴지 채 1년도 못돼 수준이 떨어진다는 일부의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홍주표 게임만큼은 그런 비난에서 비켜설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뛰어난 기량의 격투사들이 벌인 명승부였다. 4강전. 상대는 스캇 시리. 일본 입식타격 대회인 ‘K-1’에서 활약한 킥복싱의 고수다. 예선전에서 그가 보여준 타격 기술은 엄청났다. 그러나 홍주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8강전까지 상대 주먹이 두려워 고개가 돌아갔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 난타전. 시리의 무릎차기에는 무릎공격으로 맞받아쳤다. 큰 키에서 나오는 홍주표의 공격은 상대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환호성이 터졌다. 일순, 홍의 장기인 메치기 기술이 나왔다. 씨름의 밭다리와 유도의 업어치기, 태껸의 태질을 혼합해 놓은 듯한 기술. 홍은 옥신각신하던 차에 왼팔 암바(팔 십자꺾기)를 걸었고, 상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16강, 8강전에서 승리를 결정지은, 유도기술에다 정심관(홍영규 관장)에서 익힌 브라질 유술이 결합돼 또다시 위력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1라운드 TKO 승리. 사실 홍주표는 자신의 특기가 유술이라고 했다.

결승전.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나 홍주표에게도 힘든 싸움이었던 게 사실이다. 강타자 오쿠다 마사카쓰. 이종격투기 역사가 10년이 훌쩍넘은 일본 판크라스 네오블러드 대회 우승자다. 오쿠다는 4강전에서 정심관 동료 임재석으로부터 1라운드 1분여 만에 니바(다리 십자꺾기)로 탭아웃(tap out)을 받아냈다. 두려웠다. “재석이를 그렇게 쉽게 이기다니….” 1라운드.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홍의 자세다. 독특하다. 두발을 일직선으로 평행하게 놓고 상대를 맞는다. 상대가 보기엔 왼손잡이인 홍의 왼쪽 어깨와 왼쪽 바깥다리가 보일 뿐이다. 정 관장 말에 따르면 심의육합권 자세란다. 보기 드물게 유연한 몸놀림도 눈에 띈다. 타격전으로 나선다. 무릎차기와 옆차기가 터졌다. 위력적이다. 홍주표의 발차기 기술은 여태껏 태껸기술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것은 태껸의 발질과는 다르다. 상대 양팔을 걷어올려 중심을 무너뜨린 뒤 무릎차기가 들어가고, 뒷발이 반 걸음 쫓아나가며 앞발 도끼날로 내려찍는 듯한 로우킥을 한다. ‘이현령 비현령’식 해석일 수 있다. 심의육합권의 발차기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경기 필름을 구해 여러번 돌려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홍은 이내 어깨 걸어 메치기로 오쿠다를 링에 뉘었다. 그러나 땅바닥을 뒹굴며 관절을 꺾는 그래플링 기술은 오쿠다가 한 수 위였다. 암바. 제대로 들어간 기술이었다. 절망적인 순간. 링 밖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홍 관장조차 “이제 끝이다”고 한숨을 쉬었을 정도였다니…. 그러나 홍은 교묘하게 위기를 벗어났다. 왼쪽 팔이 기술에 걸리면 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식으로 암바를 풀었던 것. 그는 2라운드까지 암바를 2번이나 당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몇 번이라도 탭을 하려고 했어요.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던 겁니다. 어떻게 위기를 벗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체력 고갈이었다. 홍은 결승 1라운드 중반 이후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그를 응원하던 수천명의 관중들이 눈을 돌릴 정도였다. 그는 너무 쉽게 상대에게 자신의 등을 내줬다. 엉키면 어깨를 축 늘어뜨리기도 했다. 게임을 앞두고 하루 10시간씩 수련해온 그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게 화근이었다. 하체 근력운동을 하다 허리에 무리가 갔고, 난타전을 벌인 4강전이 끝난 직후 그는 이미 그로기 상태나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투혼. 관중들의 응원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리가 풀린 지 오래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암바는 일단 걸리면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기술이 아니다. 덩치가 산만한 고수라도 걸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뼈가 어긋나는 듯한 고통은 참고, 견뎌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3~4초만에 탭을 하게된다. 의식적으로 고통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고통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2라운드 중반. 흐느적거리며 코너로 몰렸던 홍주표가 태껸의 째차기를 한다. 무의식적으로 몸에 익은 발차기가 터졌던 것. 그러나 상대 가격에 실패했고, 바닥에 누운 그는 길로틴 초크(목 조르기)에 걸렸다. 그러나 그는 10여초를 버텨냈고, 심판의 스탠딩 지시를 유도해 냈다. 브리지로 목을 단련한 홍주표다. 초크라면 20~30분도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4분씩 진행되던 3라운드 종반. 홍주표는 오쿠다를 바닥에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이어 마운트 자세(상대 위로 올라탄 자세)에서 파운딩 펀치(소나기 펀치)를 상대 안면에 퍼부었다. 선혈이 낭자했다.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고, 홍주표의 두 손을 치켜들었다. 홍주표가 여러 차례 잡았던 파운딩 기회를 제대로 살린 것이다. TKO 승리.

이날 경기를 두고 심판의 편파 판정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둘이 엉켜 링을 뒹굴다가 오쿠다가 그라운드 기술을 걸 찰나 심판이 둘을 일으켜 세웠다는 등등의 얘기다.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인가. 그러나 홍주표의 경기 장면을 여러차례 돌려봐도 최소한 그가 진 경기는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둘 간의 승부는 용쟁호투였으며, 또 명승부였다. 경기가 끝나자 홍주표는 링에 주저앉았고, 기쁨에 포효했다. “나는 사실 무술 둔재였어요. 또 아마추어이기도 하고요. 평소에도 4~5시간씩 수련을 했지만, 항상 무술을 그만 두라는 소리를 듣고는 했지요. 그래서 우승이 더 기뻤던 겁니다.”

그는 자신의 무술이 ‘바닥’이라고 했다. 띄워주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이종격투기 무대에 나서기가 꺼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를 하겠단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식으로 떠밀려 대회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 마음이 잡히고, 무술이 또 한번 발전을 이뤘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는 이종격투기 링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kr  

Prev Page
   음양팔괘장에 빠진 이종격투기 파이터 홍주표 취재기

운영자
2004/12/08
Next Page
   <문화일보>"무림고수를 찾아서" / 태극권 고수, 음양팔괘문 정민영 노사

운영자
2004/12/08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myiweb.net